posted by 네코냥이 2013. 12. 13. 10:56



경제애국주의와 스파게티 볼 효과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겸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2007년 국제 통상환경은 세계 각국이 세계화와 선진국의 경제애국주의, 개도국의 자원민족주의 간의 절충을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절충이 잘될 경우에는 국제 통상 분야의 최대 현안인 DDA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며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기구의 위상도 다시 강화될 것이다.



선진국의 최대 화두 ‘역(逆) 윔블던 현상’
2007년 국제 통상환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해부터 선진국 내에서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역윔블던 현상’부터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영국 금융기관의 소유주가 영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선진국 자본에 의해 주로 개도국 금융시장에서 문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 들어서는 선진국 내에서 개도국 자본에 의해 똑같은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 2006년에 아랍에미리트(UAE) 국영회사인 두바이포트월드(DPW)의 미국 항만권 인수 시도, 인도 기업인 미탈스틸(Mittal Steel)의 프랑스 철강회사 아셀로(Arcelor)에 대한 적대적 인수 선언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놓고 ‘역(逆)윔블던 현상’이라고 부른다.
역윔블던 현상이 일어나는 주된 이유는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국제자금 공급원이 재편되고 있는 데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로 달러표시자산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과잉 저축분이 미국 국채에서 선진국 기업 인수 쪽으로 투자 방향을 옮기는 추세가 뚜렷하다.


세계화와 국익 간의 균형 찾아야
주목할 것은 윔블던 현상이든 역윔블던 현상이든 투자 대상국의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아질수록 순기능보다는 국부 유출, 기업 경영권 위협, 경제정책 무력화 등의 역기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특히 역윔블던 현상이 심화되어 개도국 자본이 선진국의 항만, 에너지와 같은 기간산업을 인수할 경우 경제안보와 근로자 고용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점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외쳐왔던 선진국들이 요즘 들어서는 모든 경제현안을 자국의 주권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제애국주의(economic patriotism)’로 돌아서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경제애국주의가 중시될 경우 무역장벽과 자국의 통화가치 평가절하, 자원민족주의 등으로 보호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2006년 7월 도하개발아젠다(DDA)가 실패한 것이나 벌써부터 1920년대 이후 세계 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졌던 당시와 비교해 최근의 상황이 더 진전된다면 2007년에 세계 경기가 경착륙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2007년 국제 통상환경은 세계 각국이 세계화와 선진국의 경제애국주의, 개도국의 자원민족주의 간의 절충을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절충이 잘될 경우에는 국제 통상 분야의 최대 현안인 DDA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며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기구의 위상도 다시 강화될 것이다.
반대로 절충에 실패한다면 다자기구의 위상이 급속히 약화되면서 쌍무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지리적으로 인접하거나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 간의 지역주의 움직임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대부분의 통상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체결 대상국이 많아지면서 합의내용이 서로 달라 얽히고설키는 이른바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or noodle) bowl effect)’가 심화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가 2007년의 또 다른 통상과제로 부각될 가능성도 높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당위성만 지나치게 강조해 국제 통상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익이 희생당한 측면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화와 국익 간의 균형을 찾아나가야 할 시점이다.